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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조각들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첫눈 오는 날 만나자

                      - 정호승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어머니가 싸리빗자루로 쓸어놓은
눈길을 걸어
누구의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순백의 골목을 지나
새들의 발자국 같은
흰 발자국을 남기며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러 가자

팔짱을 끼고
더러 눈길에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가난한 아저씨가 연탄 화덕 앞에
쭈그리고 앉아
목장갑 낀 손으로 구워놓은 군밤을
더러 사먹기도 하면서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눈물이 나도록
웃으며 눈깅릉 걸어가자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
첫눈을  기다리는 사람들만이
첫눈 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

세상에 눈이 내린다는 것과
눈 내리는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큰 축복인가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을 만나
커피를 마시고
눈 내리는 기차역 부근을 서성거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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