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편지
무르익기를 기다리는 가을이
흑룡강 기슭 까지 굽이 치는 날
무르익을 수 없는 내 사랑 허망하여
그대에게 가는 길 끊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마음 속에 길 이 있어
마음의 길 은 끊지 못했습니다
황홀하게 초지일관 무르익은 가을이
수미산 산자락에 기립해 있는 날
황홀할 수 없는 내 사랑 노여워
그대 향해 열린 문 닫아버렸습니다
그러나 마음 속에 문이 있어
마음의 문 을 닫지 못했습니다
작별 하는 가을의 뒷모습이
수묵색 눈물 비에 젖어 있는 날
작별 할 수 없는 내 사랑 서러워
그대에게 뻗은 가지 잘라버렸습니다
그러나 마음 속에 무성한 가지 있어
마음의 가지는 자르지 못했습니다
길 을 끊고 문 을 닫아도
문 을 닫고 가지를 잘라도
저녁 강물로 당도하는 그대여
그리움에 재갈을 물리고
움트는 생각에 바윗돌 눌러도
풀밭 한 벌판으로 흔들리는 그대여
그 위에 해와 달 멈출 수 없으매
나는 다시 길 하나 내야 하나 봅니다
나는 다시 문 하나 열어야 하나 봅니다
고정희 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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