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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노래

[스크랩] 엄마 엄마 - 양희은│1집 - 양희은 고운노래 모음 (1971)

엄마 엄마 - 양희은

1집 - 양희은 고운노래 모음 (유니버어살 1971)

양희은 Yang Hee-Eun 1952-

No.2 - 엄마 엄마

 

엄마 엄마 - 양희은

(외국곡 클레멘타인 번한)

엄마 엄마 나 잠들면 앞산에 묻지말고
뒷산에도 묻지말고 양지바른 곳으로
비가 오면 덮어주고 눈이 오면 쓸어주
정든 그님 오시거든 사랑했다 전해주

꽃이 피고 새 울거든 울지 말고 웃어주
호숫가에 낙엽져도 날 잊지 말아주
비가 오면 덮어주고 눈이 오면 쓸어주
정든 그님 오시거든 사랑했다 전해주

엄마 엄마 나 잠들면 앞산에 묻지말고
뒷산에도 묻지말고 양지바른 곳으로

Introduction

양희은은 박인희, 이연실 등과 함께 제1세대 포크 싱어로 통기타와 청바지가 상징하던 70년대 청년문화를 거론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녀는 빼어난 음감과 출중한 가창력으로 지금까지 폭넓은 사랑을 받아오고 있는 국내의 대표적인 포크 가수로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 `한사람`, `한계령`, `아름다운 것들`, `행복`, `찔레꽃 피면` , `네 꿈을 펼쳐라`, `상록수`, `하얀 목련` 등 수많은 포크 명곡을 불렀다.
양희은은 서강대 사학과 1학년이던 71년 명동 생맥주집 '오비스 캐 빈'에서 노래를 시작했다. 그해 '아침이슬'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세노야'가 수록된 첫 앨범으로 포크계의 스타가 됐다.

그녀는 암울했던 70-80년대를 건너오며 <서울로 가는 길(1972년)>, <내 님의 사랑은(1974년)>, <한사람(1975년)>, <들길 따라서(1976년)>, <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 (1978년)>으로 이어지는 앨범들을 통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노래를 통하여 어루만져 주었다.
1980년대 초에는 병으로 생사 기로를 헤메기도 하였으나 <하얀 목련'(1983년)>, <한계령(1985년)>, <이별 이후(1987년)>, <사랑 그 쓸슬함에 대하여`1991년)> 등 음악적 건재함을 과시했다.

1995년 그녀는 <내 나이 마흔에는>을 내고 더욱 성숙해진 음악세계를 선보였으며 지금까지 활발한 콘서트 활동을 통해 아직도 포크의 여왕 자리를 이어가고 있다.

     

     

[대중음악 100대 명반]67위 양희은 ‘양희은 고운노래 모음’

최규성 | 대중문화평론가ㅣ경향신문

ㆍ아침이슬, 시대와 함께 울고 웃다

김민기와 양희은이 빚어낸 ‘아침이슬’은 단순한 유행가요가 아닌 시대의 상징이었다. 재킷 속에 등장한 한국 포크 대모의 첫 모습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선머슴 같은 청바지, 청남방, 청색 운동화 그리고 생머리에 통기타가 전부였다. 하지만 맑고 청아한 보컬로 부른 이 환상적 콤비의 아름다운 멜로디와 시적인 노랫말은 동시대 젊은이들의 가슴을 쳤다. “아침이슬의 이미지를 노래로 만들었을 뿐”이라는 작곡자 김민기의 덤덤한 작곡후기와 상관없이 이 노래는 무대보단 거리에서 더 인기였다. 1970~80년대 모든 시위 현장의 주제가였고 지금도 각종 모임의 대미를 장식하며 참석자들에게 강한 연대의식을 안겨주는 국민가요가 됐다.

양희은은 김민기의 페르소나라는 이유만으로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저항가수의 상징이 됐다. 이에 그녀는 “노래의 사회성에 대해 처절하게 느꼈다. 교문 앞에서 학생들이 스크럼 짜고 나올 때 부르는 저 노래가 내가 부른 노랜가 머리카락이 서는 것 같았다. 노래라는 건 처음 세상에 내놓은 사람의 뜻과는 달리 각자 받아들이고 되불러주는 사람의 것이라는 걸 절감했다”고 회고했다.

71년 봄, 대한일보 강당 무대. 공연이 끝날 즈음 김민기의 서울대 미대 동급생 김아영이 양희은에게 그 노래의 찢겨진 악보조각을 건넸다. 그 조각난 악보를 테이프로 붙여 지금껏 간직할 만큼 ‘아침이슬’은 그녀를 감동시킨 최초의 노래였다. 71년 6월 라디오 PD의 주선으로 킹레코드 사장을 만나면서 음반 취입 기회가 왔다. 김민기가 멜로디 파트를 맡고 시각장애인 가수 이용복이 12줄 스틸기타로 리듬을 맡아 뚝섬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했다. 남산 어린이회관 앞 광장에서 재킷 사진을 찍고 4곡의 김민기 창작곡과 ‘오비스 케빈’에서 주로 불렀던 ‘일곱송이 수선화’ 등 6곡의 번안곡 등 총 10곡을 수록해 3개월 후 세상에 나왔다.

73년 정부에 의해 ‘고운 노래’상을 받았던 ‘아침이슬’은 이듬해 금지곡으로 둔갑했다. 시중에 배포된 모든 음반들이 압수되면서 평범치 않은 노래의 운명이 감지됐다. 지금까지 그녀가 발표한 200여곡 중 금지된 노래만도 무려 30여곡. 1집 수록곡 중 김광희곡 ‘세노야 세노야’를 제외한 ‘그날’ ‘엄마! 엄마!’까지 김민기의 곡은 74년부터 방송에서 자취를 감췄다. ‘시의 부적합’ ‘허무주의 조장’이란 게 금지 사유였지만 ‘아침이슬’엔 이유조차 없이 가사 속의 붉은 태양이 북측의 인사를 암시한다는 억지 해석이 내려졌다. 1집 이후 시대의 해프닝은 퍼레이드를 벌였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왜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느냐”는 꼬투리였고, ‘작은 연못’은 정권을 비꼰다는 이유로 주홍 글씨 낙인이 차례로 찍혀졌다.

금지된 노래들은 불멸의 생명력을 키워갔다. 오랜 기간 대중매체에서 사라진 곡들은 대학생들의 시위현장에서, 소외된 노동현장에서, 국민들의 각종 모임에서 더욱 질긴 생명력으로 시퍼렇게 살아 있었다. “1만번도 넘게 불렀다”는 양희은의 증언처럼 ‘아침이슬’에 국민들은 ‘가장 즐겨 듣는 대중가요 1위’라는 사랑으로 화답했다. 그 노래가 최초로 수록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양희은의 1집은 70년대 포크음반의 전설이 됐다.

< 최규성 | 대중문화평론가> 2008-04-24

     

     

슬픈 노래

너무도 유명한 미국의 작곡가 포스터가 지은 곡인데, 한국에 들어와서 가사가 바뀌어 분위기마저 완전히 변해버린 노래이다. 다시 말해서, 클레멘타인 원곡에다 이 변형된 가사를 붙인 노래인데, 혹시 저작권 침해는 아니겠고, 그냥 포스터가 들으면 섭섭해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마도 60년대 말경서부터 불리운것 같다. 어떻게 아냐고? 내가 그 때쯤 줏어 들었으니까.

엄마 엄마 나 죽거든 앞산에다 묻지마
뒷산에도 묻지말고 양지쪽에 묻어줘

비가 오면 덮어주고 눈이 오면 쓸어줘
내 친구가 찾아와도 엄마 엄마 울지마

가사가 얼마나 슬픈지, 초등학생도 안된 나의 심금을 울리고도 남은 곡이 이 곡이었다. 슬프면 부르고, 혼나면 부르고, 비오면 부르고, 눈이 와도 부르고, 청승 맞다고 부르지 말라는데, 또 부르다가 혼나고, 혼나서 눈물나면 또 부르고...

그 때에 얻어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어떤 어린 소녀가 백혈병으로 죽으면서 노랫말을 지었다고 하는데 그야말로 믿거나 말거나. 그래도, 지금도 조용한 방구석에서 가만히 가사를 되뇌이며 불러보면 금방이라도 눈물이 어리고 마음 한가운데가 뻥- 하니 뚫리는 듯한 느낌이 온다. 잘 지었다는 이야기.

흩뿌리는 빗물 사이로 내리놓인 바다에는 안개가 피었다. 충충한 하늘과 또 그같은 바다의 사이에서 괜히 센티멘탈해지면서 떠오른 노래. 그냥 잊지 않기 위해 적어본다.

글 출처 : 심심하면 카메라 뜯어보기

     

아주 슬픈 노래 - 강사랑

아주 슬픈 노래

강사랑

엄마, 엄마 나 죽거든

 

아주 슬픈 노래 - 강사랑

엄마 엄마 우리엄마 나떠나면 울지마
뒷산에다 묻지말고 앞산에다 묻어줘

눈이오면 쓸어주고 비가오면 덮어 주
옛 친구가 찾아오면 나 본듯이 반겨줘

엄마 엄마 우리엄마 나떠나면 설워마
음지에다 묻지말고 양지에다 묻어주

봄이오면 꽃잎따서 가을오면 단풍따서
무덤가에 뿌려주고 내손한번 잡아주

아가아가 우리아가 부디부디 잘가라
고통없는 세상으로 휠훨날아 가거라

가도가도 끝없는 길 어디에서 머물꼬
좋은 세상 만나거든 다시 태어나거라

좋은 세상 만나거든 휠훨날아 다녀라

     

아주 슬픈 노래

약을 먹어선 죽지 않아. 차라리 거미줄에 목을 매는 게 낫지."

몇 번의 자살을 시도 했던 경험이 있는 그녀는  아이를 타이르듯 내게 말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우아하게 죽고 싶단 생각을 하는 것은 아직 삶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기 때문이야.  치사량에 못 미치는 수면제를 먹고  세상과 작별하겠다는 그 야무진 꿈이 허영이란 걸 깨닫는데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아.  속을 게워낸 시큼한 음식 냄새를 맡으며 응급실 침대에서 눈을 뜨는 일이 얼마나 쪽팔리는 줄 알기나 하니?  미수에 그친 자살의 경험도 삶의 이력이 되는지 남의 일처럼 푸념하듯 내어뱉는 그녀의 말에 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넌 태생적으로 자살을 할 수 없는 DNA를 지녔어. 스스로 목숨을 끊기엔 너무 낙천적인 유전자를 지녔다구."

항우울제를 달고 사는 그녀가 단정적으로 말했을 때 나는 죽음보다 깊은 절망을 느꼈다. 함부로 죽을 수도 없는 인생이라니,  이 무슨 저주란 말인가.  세상의 벼랑 끝까지 몰렸을 때, 숨 쉬는 것마저 힘이 들어 목숨줄 놓고 싶던 그 순간에 낯 익은 늙은 여자 우는 얼굴이 떠올랐었다. 아무런 말도 없이 눈물을 흘리던 그 여자의 젖은 눈빛이 나를 놓아주지 않았었다. '울지 말아요. 절대로 당신보다 먼저 죽지는 않을게요.'

글 출처 : 꽃에게 말을 거는 남자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

     
출처 : 어리버리 돈키호테
글쓴이 : 리차드 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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