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변에서 / 서울대 메아리
서산에 붉은 해 걸리고 강변에 앉아서 쉬노라면
낯익은 얼굴이 하나 둘 집으로 돌아온다
늘어진 어깨마다 퀭한 두 눈마다
빨간 노을이 물들면 웬지 맘이 설레인다
강 건너 공장의 굴뚝엔 시커먼 연기가 펴오르고
순이네 뎅그란 굴뚝엔 작은 실오라기 펴오른다
바람은 어두워가고 별들은 춤추는데
건너 공장에 나간 순이는 왜 안돌아 오는걸까
높다란 철교 위로 호사한 기차가 지나가면
강물은 일고 일어나 작은 나룻배 흔들린다
아이야 불 밝혀라 뱃전에 불 밝혀라
저 강 건너 오솔길 따라 우리 순이가 돌아온다
라라라 라라라 노 저어라 열 여섯살 순이가 돌아온다
라라라 라라라 노 저어라 우리 순이가 돌아온다
아이야 불 밝혀라 뱃전에 불밝혀라
저 강 건너 오솔길 따라 우리 순이가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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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희의 <난쏘공>을 텍스트로 삼았던 시절을 기억한다면 김민기의
노래를 잊지 못한다. 복사본을 숨어 읽던 골방인생들에게는 사연이
많은 노래다. 슬금슬금 양지로 나와 허름한 술집에서 암울한 시국을
이야기하다가도 마지막 술잔을 뱃속에 털고 방파제로 나가 불러댔던
노래들이었다. 80년 민주화의 봄이 군화발에 짓밟히면서 속울음을
삼키던 그 시절, 한밤중에 바닷가 방파제에 드러누워 울분을 토로할
때도 그의 노래는 좋은 벗이 됐다.
87년 6월항쟁은 80년 5월에 빼앗겼던 민주화의 봄을 돌려받는 국민항쟁
이었다. 노래들도 우렁차졌다. 쓸쓸함이 묻은 김민기풍도 학원가나
거리에서 뒷골목으로 많이 밀려났다. 노래도 역사를 따라간 것이다.
노래는 노래로 남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불러 주어야 노래인 것이다.
그러나 유신독재를 거쳐 전두환 폭정으로 넘어가는 동안 우리들은
김민기 노래를 통해 80년대를 맞이했고,적응했던 만큼 애정을 버리지
못한다. 87년 6월 이후 쏟아져 나온 노래보다 더 콧날이 시큰해지는
이유는 왜일까. 그의 노래가 질곡의 한국현대사 속에 민중들과 애환을
같이 해와서 그런가.
오늘 다시 들으며 그 날의 분노...애환을 더듬는다. 아우성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음을 본다. 강변에 나와 '공장의 불빛'을 바라보고 있을
우리들의 순이를 생각한다. 농토에서, 바다밭에서, 갯벌에서, 거리에서
실날같은 희망을 붙잡고 있는 오늘의 슬픔들을 본다.
서울대 메아리가 부릅니다
**글쓰기교육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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