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백창우/송창식

 

 
거리 1

너는 모를 거다
때때로 내 가슴에 큰 소나기가 쏟아져
내 삶을 온통 적시는 것을
어디론가 멀리 떠나가
꿈도 없는 긴 잠 속에 며칠이고
나를 눕히고 싶다

너는 모를 거다
때때로 내 가슴에 큰바람 몰아쳐
내 눈과 귀를 멀게 하는 것을
아무도 없는 어둠 한구석
찬 벽에 등 기대앉아
새벽이 오도록 별을 바라보고 싶다

나는 안다
너는 내 마음속에, 나는 네 마음속에
이토록 크게 자리잡고 있지만
때때로 우린, 철저히
혼자라는 것을...
 

 

거리 2 

 

그래, 그럴수도 있겠지
너는 너를 살고
나는 나를 살아

우리의 삶이 많이 달라 보일수도 있겠지
네가 쫓는 파랑새가
내 앞길엔 없고

내가 찾아내 이름 붙여준 아주 조그만 별이
네 하늘엔 없을수도 있겠지
네 마음을 울리는 노래가

내겐 별볼일 없고
내 영혼을 사로잡는 시 한 편이
네겐 그저 그럴수도 있겠지

그래도 우린 이렇게 함께 살아가지
가끔 서로의 살아있음을 확인하며

넌 너의 이름을 갖고
난 나의 이름을 갖고
넌 너의 얼굴로
난 나의 얼굴로 거리

 

 

 

 

 

거리 3

 

그대와 내가

어느만큼의 거리를 두고

서로를 바라보는 일은

참 좋다

사랑은 둘이서 한 곳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각기 바라보는 곳에 대해 이해하는 것

그대는 그대의 길을 가고

나는 나의 길을 가더라도

우리 사랑 훼손받지 않기 위해 할 일은

그대가 어느만큼의 거리를 두고

나를 사랑하는 일

내가 어느만큼의 거리를 두고

그대를 사랑하는 일

 

 

 

 

그래, 그럴수도 있겠지 / 이건용 曲 송창식 歌


너는 너를 살고 나는 나를 살아
우리가 무척 달라 보일수도 있겠지

너의 파랑새가 내 앞길엔 없고
나의 작은 별이 네 하늘엔 없겠지

너의 마음 울리는 노래가
나를 울리지 못하고
내게 목숨같은 시 한 줄이
네겐 그저 그럴수도 있겠지

그래도
우린 이렇게 함께 살아가지
서로의 살아있음을 확인하며

넌 너의 이름을 갖고
난 나의 이름을 갖고
넌 너의 얼굴로
난 나의 얼굴로

 

 

 

 

그의 시는 어둡다.

그 어둠 속에서 그는 늘 꿈을 꾼다.

빛나는 아침을, 푸른 별을, 좋은 세상을, 고운 사람들을...

열여섯살부터 시를 쓰기 시작한 그의 노트엔 그의 삶이 온통 담겨 있다.

그는 시처럼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아니, 그는 삶의 전 순간을 시로 채우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그의 주머니엔 언제나 수첩 한권이 들어있다.

그는 삶의 모든 자리에서 시를 쓴다.

길에서, 술자리에서, 동시상영을 하는 침침한 삼류극장에서,

잠자리에서, 뒷간에서, 시위현장의 최루탄 속에서,

무대 뒷켠에서, 새벽기차에서, 포장마차에서, 음악을 듣다가, 바둑을 두다가,

논둑길을 걷다가, 지하철에서 흔들리다가, 노름을 하다가, 책을 읽다가..........

  그렇지만 그는 시 쓰는 일을 빼곤 무척 게으르다. 느릿느릿 하다.

 

그는 싫어하는 것이 참 많다.

텔레비전도 잘 보지 않고, 화학조미료 든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여러 사람이 둘러 앉아 술을 먹다가 돌아가면서 노래하는 걸 아주 질색하고,

노래방이나 디스코텍 같이 시끄러운 곳에 가기를 싫어 한다.

아침 약속을 싫어하고 - 새벽 네 다섯시에 잠자리에 드는 그로선 당연한 일이지만 -

정기적인 일을 잘 못해 낸다 .

언젠가 라디오 음악프로에 '백창우의 이런 노래 들어보셨나요'라는 코너를

 일주일에 한번씩 한 반년가까이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방송펑크를 아마 대여섯번은 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는 싫어하는 것도 많지만 그보다는 좋아하는 게 더 많다.

여행을 좋아하고 (그는 죽기까지 이 세상을 다 한번 밟아보고 싶어한다.)

 헌책방에서 구석구석 뒤적거리는 걸 무척 좋아한다.

만화 보는 것을 좋아하고 (이희재나 이현세·이상무·박흥용·허영만의 만화는 거의 빼놓지 않고 본다)

밤기차 타기를 좋아하고,

개성적인 카페를 찾아다니는 걸 좋아한다 (그는 어느날 <카페순례>라는 시집을 낼지도 모른다)

그는 나무로 만든 것들을 좋아하고 책을 아주 좋아한다. (책과 여행은 그의 좋은 친구이다)

 

그냥 맨발에 고무신을 신고, 헐렁한 바지에 가방 하나 든 채 그는 가끔 행방불명이 된다.

어디서 뭘하고 다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는 정상적인 사람이 아닌 것이 틀림 없다.

그의 시들도 뭔가 문제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시인 백창우는 따뜻한 사람이다.

그 자신이 '고운 사람'으로 남기를 바라는 어린 아이 같은 사람이다.

 

** 펴낸 시집 :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 <사람하나 만나고 싶다 2>, <겨울편지>,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백창우 인터넷 소굴 개밥그릇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