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죽시’(八竹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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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불교 고승 가운데 3명의 행보가 눈여겨볼 만하다. 그 3명이란 7세기에 활동하였던 의상(義相), 원효(元曉), 부설(浮雪)이다. 의상과 원효는 해골바가지 물 먹은 사건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부설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흔히 부설거사(浮雪居士)로 불린다. 결혼하여 아들과 딸이 있었기 때문다.
이들 3인은 여자와 결혼문제에 대하여 각기 대처 방식이 달랐다. 먼저 의상은 철저하게 여자를 멀리하는 청정비구(淸淨比丘)의 삶이었다. 의상을 죽도록 사모했던 중국 처녀 선묘(善妙). 그녀는 자신의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물속에 뛰어들어 용이 되었다. 죽어서 용이 된 선묘는 영주 부석사(浮石寺)에까지 따라와 의상을 지키는 신장(神將)이 되었다. 원효는 요석공주와 잠깐 살면서 아들 설총을 낳았다.
그렇지만 요석궁에서 결혼생활을 계속하지는 않고 다시 승려생활로 되돌아갔다
부설은 도반스님들과 순례를 하던 중에 묘화(妙花)라는 처녀의 간곡한 청혼을 받는다. 하도 간곡하게 청혼을 하는 바람에 차마 거절하지 못한다. 결혼해서 아들(登雲)과 딸(月明)을 낳은 뒤에도 계속 수행에 정진하여 도통(道通)하였다고 전해진다. 부설 자신뿐만 아니라 이후에 부인과 아들, 딸이 모두 도통하였다. 말하자면 ‘패밀리(family) 도통’이다. ‘패밀리 도통’은 세계불교사에서 유일한 일이 아닐까. 부설거사 일가족이 도통한 자리가 변산 월명암(月明庵)이다. 월명암에는 부설거사가 남긴 시가 전해 내려 온다.
읽어 볼 때마다 참 기막힌 시라는 생각이 든다.
그 시 제목은 ‘팔죽시’(八竹詩)이다.
‘이런 대로 저런 대로 되어가는 대로(此竹彼竹化去竹),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風打之竹浪打竹),
죽이면 죽, 밥이면 밥, 이런 대로 살고(粥粥飯飯生此竹),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르고, 저런 대로 보고(是是非非看彼竹),
손님 접대는 집안 형편대로(賓客接待家勢竹),
시장 물건 사고 파는 것은 세월대로(市井賣買歲月竹),
세상만사 내 맘대로 되지 않아도(萬事不如吾心竹),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대로 보내네(然然然世過然竹).
#여기서 ‘죽’(竹)자는 우리말 ‘대로’라고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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