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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모든음악

Stenka Razin / Russian Folk




Russian Folk song

넘쳐 넘쳐 흘러가는 볼가강물 위에
스텐카 라친 배 위에서 노래소리 들린다

페르샤의 영화의 꿈 다시 찾은 공주의
웃음 띄운 그 입술의 노랫소리 드높다

동편 저쪽 물 위에서 일어나는 아우성
교만할 손 공주로다 우리들은 우리다

다시 못 올 그 옛날의 볼가강물 흐르고
꿈을 깨친 스텐카 라친 장하도다 그 모습


Stenka Razin

부유한 돈 카자크 집안 출신으로 가난한 폴란드. 러시아의
농노들이 돈 카자크에 정착하기 위해 계속 도망해 옴으로써
사회 불안이 팽배한 분위기에서 자랐다.

1667년 토지를 소유하지 못한 이주자와 모험가들로 이루어진
작은 무리의 지도자가 되어 볼가 강 근처 돈강 상류 지역에
새로운 카자크 전초기지를 세웠다.

그뒤 3년 동안 차르에게 보내는 재물을 운반하는
거대한 볼가강 소함대를 약탈하는가 하면 야이크(지금의 우랄)
강 연안의 야이크시를 정복했고(1668) 바다 건너 페르시아의
카스피해 연안에 있는 이슬람 정착지인 데르벤트. 바쿠.라슈트 등을
파괴했으며, 페르시아 왕이 파견한 함대를 격퇴하는(1669) 등
과감하게 러시아와 페르시아 정착촌들을 습격했다.

재물과 명성을 얻고 돈으로 돌아온 라친은 1670년 다시
볼가강 연안의 차르 요새 정벌에 나서 7천여명의 카자크군을 이끌고
차리친(지금의 볼고그라드)과 아스트라한을 함락시켰다.

두 도시에서 라친과 그 부하들은 연회를 벌이고 귀족과 장교들을
무참하게 살해하는 야만적 행위를 서슴치 않았다.

또한 그 지역 정부들을 카자크 자치기관들로 대체했다.
이러한 성공에 용기백배한 그는 볼가강까지 진격하기로 결정하고
도중에 농민과 도시하층민 들을 선동해 귀족과 관료를 타도하기 위한
(그러나 차르에는 대항하지 않았음) 반란군에 가담시켰다.

2만 명으로 늘어난 병력을 이끌고 사라토프를 정복했으며
심비르스크까지 진출하여 그의 반란군은 볼가강 전지역 및 돈강과
도네츠크 강 인접지역뿐만 아니라 러시아 중부지방까지 진출했다.

스텐카 라친의 반란에 놀란 차르 알렉세이(1645~1676재위)는
황태자 유리 바리야틴스키에게 군대를 내주어
심비르스크를 탈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서유럽의 군사기술을 익힌 황태자의 군대는 허술한 장비에
제대로 훈련받지 못한 라친의 군대에게 결정적인 패배를 안겨주었다

스텐카 라친은 돈으로 도망쳤으나 1671년 4월 24일
왕당파 카자크에게 체포되어 차르에게 보내졌다.
모스크바로 이송되어 심한 고문을 받은 스텐카 라친은
붉은광장에서 능지처참형을 당했다.

차르의 군대는 반란군의 마을을 불사르고 폭동을 진압하면서
반란군 지도자들을 처형했다. 

그리고 1671년 12월 반란군 최후의 거점 도시인 아스트라한을 탈환했다.

스텐카 라친의 봉기는 서로 다른 두 세력인 카자크와 농민을 결합시켰다.
카자크들이 나선 것은 소위 무정부주의에 대한 그들의 이상 때문이었으며
농민은 1649년 마침내 입법화된 "농노제"에 대한 증오가
봉기에 나서게 된 주요 동기였다.


Stenka Razin - 이연실

Stenka Razin - Andre Rieu and his Orchest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