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스님의 방석
노스님의 방석을 갈았다 솜이 딱딱하다
저 두꺼운 방석이 이토록 딱딱해질 때까지
야윈 엉덩이는 까맣게 죽었을 것이다
오래 전에 몸뚱어리는 놓았을 것이다
눌린 만큼 속으로 다문 사십년 방석의 침묵
꿈쩍도 않는다, 먼지도 안 난다
퇴설당 앞뜰에 앉아
몽둥이로 방석을 탁, 탁, 두드린다
제대로 독 오른 중생아!
이 독한 늙은 부처야!
(박규리·시인, 1960-)
+ 운전하는 스님 - 개미
매연이 쏟아지는 미아리 고개를 넘어가던 개미가
승용차를 몰고 가는 스님을 보고 웃는다
'구도求道는 걸어서 얻는 것인데
가다가 길이 없으면
차를 버리고 어디로 갈 것인가
나는 물 위도 걸어가는데' 하며 차를 비켜간다
(이생진·시인, 1929-)
+ 스님 앞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 부흥리 산 11번지
백련암
공월 스님 앞
주소는 맞는데 답장이 없다
떠날 때도 그녀는 말이 없더니
(이생진·시인, 1929-)
+ 중광 스님의 말년
어느 날 내설악 깊은 산중 백담사에
상처 입은 짐승 한 분이 오셨다
빨간 빵떡모자에 검은 선글라스
땟국물 흐르는 승복에는
코흘리개 손수건 한 장이 달랑 매달려 있었다
옷깃만 스쳐도 살이 베였다는 수좌였다가
온몸으로 화폭이고, 물감이었던 화가였다가
이제는 돌아와 한 마리 순한 짐승이 된 그 분은
어슬렁어슬렁 경내를 거닐다
반가운 사람이라도 지나가면
두 손을 높이 들고 반짝반짝 작은 별을 그리곤 했다
그러면 벌건 대낮에도
순한 짐승 같은 별들이 반짝반짝 뜨곤 하는 것이었다
(이홍섭·시인,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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