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노래, 저항과 서정의 오라토리오
▲ 그리스의 국민작곡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 조국과 민중을 사랑한 그의 음악에는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다. |
미국의 패권주의와 자본에 유린당한 중남미 대륙, 착취와 억압, 핍박의 굴레에서 신음하는 민중들의 처참한 실상을 처절하고 장엄하게, 때로는 섬세한 서정의 미학으로 세계민중들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전했던 파블로 네루다의 시편 <모두의 노래>.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칠레가 낳은 위대한 민중시인이자 혁명가인 그의 시편만으로도 감동은 충분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던 것일까. 그리스의 음악거장이자 저항운동가인 미키스 테오도라키스가 네루다의 시편에 음악의 혼을 불어 넣은 것이다. 앨범 이름도 <모두의 노래>(Canto general)다. 네루다가 피로 새긴 불멸의 대서사시가 어떻게 오라토리오 음악으로 만들어졌을까.
파리 망명 시절 '예술'과 '혁명'이라는 두 깃발을 온몸으로 끌어안고 살았던 두 영혼의 생애 첫 조우가 이루어졌다. 그후 네루다의 주선으로 칠레를 방문한 테오도라키스는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칠레 민중의 숭고한 몸짓에 큰 감동을 받았다. 게다가 네루다의 수많은 시가 자유의 외침이 되고 있는 것을 목도했다. 그는 결심했다. 칠레 민중을 위해 '모두의 노래'를 음악으로 승화시키기로.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까지 나서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네루다의 시집을 꺼내 들고 몇 편의 시를 직접 낭송하며 테오도라키스를 격려했다.
작곡은 망명지 파리에서 이루어졌다. 파시즘 폭력에 맞서 민주주의와 평화, 자유와 인권을 위해 싸웠던 두 거장이 만나 지난 세기 인류에게 남긴 위대한 유산은 이렇게 탄생했다. 1973년 아르헨티나에서 첫 공연이 열렸다. 반응은 상상을 뛰어 넘었다. 공연이 끝난 후 객석을 가득 메운 청중은 테오도라키스와 네루다를 목 터져라 연호했고, 망명작곡가 테오도라키스는 벅차오르는 감격에 목이 메었다. 다음 차례는 시인의 땅인 칠레 공연. 하지만 그토록 바라던 세기의 공연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인 앞에서 연주하는 기회는 끝내 찾아오지 않았다.
1973년 9월 11일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칠레 군부가 피노체트를 앞세워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나는 바라지 않는다 다시 빵에 피가 묻는 것을/ 강낭콩에 피가 빨갛게 물들고/ 음악이 피를 쏟아내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평화 있어라)라고 네루다는 절규했지만, 칠레의 민주주의는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아옌데 대통령은 끝까지 대통령궁을 사수하다 안타까운 최후를 마쳤다. 민중을 뜨겁게 사랑했고, 불꽃같은 언어로 '거리의 피'를 노래했던 혁명시인 네루다마저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소식을 병상에서 듣고 피눈물을 흘리다가 얼마 되지 않아 생을 마감했다. 아, 그리고 칠레 민중이 사랑했던 빅토르 하라, 수많은 거리의 전사들...
그래서일까. 더욱 다듬어진 <모두의 노래>에는 가슴을 가득 메우는 아픔이 있다. "아픔보다 넓은 공간은 없다/ 피를 흘리는 아픔에 견줄만한 우주도 없다"라고 노래한 파블로 네루다의 시 그대로.
▲ 1970년 프랑스 망명 시절 파리에서 만난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오른쪽)와 파블로 네루다 부부의 모습. 네루다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불꽃처럼 살다간 칠레의 혁명시인이자 위대한 혁명가였다. |
세월이 흘러 테오도라키스가 꿈꾸었던 칠레 공연은 1993년이 되어서야 이루어졌다. 2004년에는 네루다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스페인 공연이 있었다. 그때 팔십이 된 노인이 지휘봉을 들고 청중들 앞에 모습을 내밀었다. 마지막 남은 생애 잊지 못할 혁명시인의 탄신을 축원하고 시인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작곡가가 직접 무대에 선 것이다.
<모두의 노래> 앨범은 그 자체만으로도 여운이 길다. 1981년 뮌헨 올림픽홀에서 테오도라키스가 직접 지휘하고, 그의 음악의 최고 해석자인 마리아 파란두리와 페트로스 판디스가 성야곱합창단과 호흡을 맞춰 공연한 실황을 담은 것이 현재 알려진 공식 앨범이다. 이 앨범에는 열 세곡이 CD 2장에 수록되어 있다. 물론 네루다의 시집에 없는 곡 하나가 더 있다. 1975년 조국 그리스 공연 때 추가된 '네루다를 위한 진혼곡'(Neruda Requiem Eternam)이 그것이다.
귀 기울여 보라. 장대하고 웅장한 작품 스케일에 걸맞게 그리스 최고의 두 뮤지션이 부르는 영혼의 노래에. 가슴을 맞대보라. 격정과 흥분, 절망과 신음, 저항과 희망의 울림이 어떻게 우리에게 다가와 대지를 일깨우는 홀씨가 되는지를.
출처/굴렁쇠
#1-Algunas Bestias(어떤 짐승들) 11:52 / #2-America Insurrecta(반란의 아메리카)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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