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 잔, 그리고 / 오광수
파름하게 다가오는 차 한 잔으로
세상 붙잡은 한 끈을 놓고
또르르르
차 따르는 소리가
지리산의 운해(雲海)를 건너가는데
방안 가득히 번지는 차향(茶香)이
먼 기억, 저 편에서
어긋났던 인연의 모습들을
하나씩 하나씩 낯익은 향기가 되어
조용히 불러내고있다
마주 앉은 마음은 만감(萬感)인데
권하는 하얀손이 아직도 너무 고와
찻잔 잡은 내 손이
보일듯 아니 보일듯 작게 떨림은
나도 모르는 지우지 못한 가슴이 있는가?
한 모금 머금고 삼키기전에
잔 밑에 손받치고 앞을보니
예전에 보았던 밝은 모습대신
다소곳 잿빛 고운 바위하나가
지리산 푸름앞에 앉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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